죽음

죽음은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죽음

할아버지께서 이틀 전, 수요일 새벽에 돌아가셨다. 비록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진 않았지만, 항상 따뜻하게 관심 가져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불과 몇 달 전에 찾아뵙고 인사드린 게 정말 어제 같았다.

나는 예비군 훈련 때문에, 동생은 대학원 연구실 환영회 때문에 이튿날인 목요일 새벽에 익산으로 내려갔다. 도착하는 동안 어머니께서 계속 어디냐고 물으셨다. 왜 이렇게 조급해하시나 싶어 살짝 짜증이 났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올라가 보니 화환이 가득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화환은 처음 봤다. 어른들께서 참 열심히 사셨나 보다.

장례식장

배정된 실에 들어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병관이형, 병화형, 효근이형, 명지누나, 서영이누나, 은지누나, 큰어머니, 둘째 큰어머니, 큰고모, 작은고모, 큰아버지, 둘째 큰아버지, 큰고모부, 작은고모부, 그리고 할머니. 이렇게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건 거의 20년 만이었다.

서둘러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절을 두 번 하고 국화를 올려두었는데, 그 순서를 반대로 해버렸다. 큰고모부께서 친절히 알려주셔서 그제야 알게 됐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휴게실을 나와 형들에게 어떤 일을 하면 되는지 물어봤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오시는 분들께 누구를 찾아오셨는지 여쭙고, 부의함과 방명록을 안내하는 일, 그리고 신발 정리.

점심 무렵부터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두세 번 맞이하고 나니 대충 감이 잡혔다.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단지 오래 서 있는 게 힘들 뿐. 잠시 앉아 어머니와 우리 집 강아지 ‘별이’ 이야기를 나눴다. 별이는 요즘 상태가 좋지 않다. 신장이 많이 안 좋다. 수의사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별이를 병원에 맡기고 내려오는 마음이 무거웠다. 혹시 우리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별이 없는 우리 집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 마음을 어머니께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너는 무슨 별이 이야기를 하냐”며 웃어넘기셨다. 하긴, 이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복잡하진 않았다.

입관

어느덧 4시가 되어, 입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온 가족이 지하로 내려갔다. 목사님과 권사, 집사님들 앞에 할아버지께서 누워 계셨다. 예배를 마치고 장례식장 직원분들이 마지막 인사를 드릴 시간을 주셨다. 어른들께서 슬퍼하시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흘렀다. 특히 아버지께서 오열하시는 모습, 할머니께서 짧고 담담하게 인사하시는 모습. 그 안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의연함을 동시에 느꼈다.

내 차례가 되어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누워 계신 할아버지 모습을 보며 떠오른 말은 단 하나였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효근이형과 함께 할아버지를 관에 모셨다. 그렇게 입관 예배를 마쳤다. 다시 2층 실로 올라오는 길은 무척 무거웠다. 내 손으로 할아버지를 관에 모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특히 할아버지의 무게를 직접 느끼니 더더욱, 살아 계실 것만 같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골 안방에 들어가면 “왔냐~?” 하고 인사해주실 것만 같다.

조문 행렬은 계속됐다. 형들이 말하길 전날에 오신 분들 중 70~80%가 아버지 손님이었다고 했는데, 과장이 아니었다. 누구를 찾아오셨냐고 여쭤볼 때마다 아버지 성함이 들렸다. 참, 발 하나는 기가 막히게 넓으시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외삼촌도 방문하셨다. 부산에서 올라오신 외조부모님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미소가 지어졌지만 이내 다시 중심을 잡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역할이 있다 보니 자리를 지켰다. 그런 나를 보시고 큰고모부께서 “지금은 한가하니 다녀오라”며 배려해주셨다.

외할아버지께서 나를 보시더니 환하게 웃으시며 반겨주셨다. 여담이지만, 나는 어릴 적 어머니가 공부하시던 마지막 1년을 외가에서 보내서 외조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많다. 어린 시절 부산역에서 KTX를 탈 때마다 가기 싫어 울었던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쯤까지 그랬던 것 같다. 다시 돌아와 외할아버지께서 “너 보니까 눈물이 날라칸다”고 하셨을 때, 나도 감정이 벅차올랐지만 웃으며 눈물을 삼켰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4월에 꼭 부산에 가겠다고 약속드렸다.

형 누나들

장례를 치르며 형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확히 말하면, 누나들보다는 형들과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혈육이라는 게 참 묘하다. 오랜만에 봤지만 오랜만 같지 않았다. 그게 무려 10년 만인데도. 어떤 느낌인지 알까? 그나마 형들은 가끔 시골 오가며 마주쳤지만, 누나들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다들 가까이 사는데 연락 좀 하고 지낼걸. 미안함이 크다.

덴버

어릴 적 미국에서 잠시 살았을 때, 같이 지내던 공무원 가족들이 있었다. 특히 아버지와 가까웠던 마 국장님께서 오셨다. 처음엔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보시더니, 약주를 조금 하시고 나서야 나를 알아보셨다. 조금 짠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커 보이던 아저씨가 작아 보이더라. 그런데도 우리 가족에게 보여준 사랑은 여전히 컸다. 그게 참 인간다워 보였고, 아름다웠다.

화장

정신없이 손님들을 맞고, 돈 계산하고, 기록했다. 하루 해보니 형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실감이 났다. 그제야 어머니가 계속 전화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고, 형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화장터에 가기 전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두 지하로 다시 모였다. 예배 후, 할아버지를 버스에 모시고 화장터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살아 계신 것처럼 무거우셨다. 버스에 타고선 곯아떨어졌다.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어느새 화장터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 정말 할아버지의 육신을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구나.

할아버지께서 화장터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며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특히 큰고모께서는 할아버지를 부르시며 애통해하셨다. 이때 할머니께서 큰고모의 손을 꼭 잡고 “경아야, 울지 마”라고 말씀하신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한평생을 함께하신 분을 보내는 순간이었는데도, 할머니는 참 의연하셨다.

화장을 마치고 2층 대기실에서 예배를 드렸다. 가족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할머니가 조용히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계신 걸 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뻔했지만, 이내 웃으며 할머니 손을 꼭 잡았다.

조금 뒤, 화장이 마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온 가족이 내려가 이제 뼈로 남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유골함은 정말 뜨거웠다. 그러나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집중하며 걸었다.

버스에 앉아서도 계속 할아버지를 안고 있었다. 생전에 안아드리지 못한 후회 때문인지 유골함을 꼭 끌어안고 장지까지 갔다. 그 열기는 어느새 온기로 바뀌었다. 어쩌면 내가 할아버지의 유지를 전해 받은 게 아닐까.

장지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왔던 산소에, 이제는 할아버지를 모시러 왔다. 마지막 예배를 마치고 성토하는 순간, 진짜 이별이 찾아왔다. 한 명씩 돌아가며 흙을 뿌렸다. 할아버지 덕분에 아버지가 계셨고, 아버지가 계셨기에 내가 있었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묘지를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았다. 내가 느꼈던 마지막 온기는 이제 대지에 전해졌고, 조상님들 곁에서 영원하시길 바란다.

가족

할아버지께 참 감사하다. 덕분에 온 가족이 모일 수 있었다. 시골집에 17명이 모여 앉아 있으니 음식도 금세 사라지고, 이야기꽃도 끊이질 않았다.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참 풍족했다. 또, 재산과 장례 비용을 서로 더 나누려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많은 걸 배웠다.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게 가족이다.

그 와중에 예전에 만났던 친구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가족의 가치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아니, 부정했다. 혼자 모든 걸 짊어져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가족, 친구, 연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게 그들을 위한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나를 고립시키고 있었다. 주변과 더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죽음

장례 기간 내내 베이식의 노래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가 떠올랐다. “이별은 어렵다”는 말은 당연하지만 삶을 꿰뚫는다. 특히 나는 이별이 너무 어렵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걸 알지만 항상 마음 아프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나의 일부를 떼어내는 느낌이다. 함께한 시간을 부정하는 것만 같고, ‘그때 그랬더라면…’ 하고 후회하게 만든다.

한편 이별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와 좋았던 것은 추억으로, 나빴던 것은 경험으로 남길 수 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이들에게도 새로운 시작이다.

죽음은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